내가 지금 이런걸 쓰고 있으면 안되는데..
일단은 쓰자.
성도덕이라는 개념이 있다.
근데 나는 이게 정확히 어떤 개념인지 모르니 일단 허수아비 논법으로 이야기하겠다.
여기서 말하는 성도덕은 성과 관련된 도덕이다.
(그러면 먼저 성도덕이전에 성도덕과 관련된 도덕에 대해 생각해야겠지만, 이건 일단 뒤로 미루자.)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성은 섹스다. 섹스.
....
...
..
쌍방이 좋다는데, 남이 어떤식으로 섹스를 하든 그게 도덕이랑 무슨 상관이냐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연인의 양다리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마치 일부일처제에서 기인한 사회적 편견이나 고리타분한 틀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도 사실 여기에 동조하고 싶기도 하지만.
나는 현실에서 느끼는것과 어떤 괴리를 느끼기 때문에.... 쉽게 동조할수가 없다.
섹스를 왜하는가?
마치 섹스학개론 비슷한 내용을 말할것같은 문장인데...
섹스를 왜 할까?
여기에 대해 사람들은 헛웃음을 터트릴지도 모르겠다.
밥은 왜 먹고, 숨은 왜 쉬고 똥은 왜 싸세요? 라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살기위해 먹느냐, 먹기위해 사느냐는 논쟁은 나중으로 미루자. 성도덕은 먹기위해 사는거냐는 개념인듯하니까.)
그러면 왜가 아닌 어떻게로 이야기를 바꿔보자.
섹스를 어떻게 해야할까? 로 말이다.
일단 유형을 나누면
임신이 되는 섹스를 하는게 있고,
임신하면 곤란한 섹스가 있다.
그리고 둘 중 어떤 섹스든간에 섹스는 쌍방의 합의에서 즐겁게 이루어져야한다.
아마 이게 도덕적인 섹스일것이다.
이를테면 상대방의 동의가 없이
'일단 하면 너도 기분이 좋아질거야.'
하면서 대다수가 혐오하는 에널을 고집한다거나(왜 솔직히 말하지 않는걸까, 너의 보지가 너무 헐어서 허공을 젓는 기분이라고. 그래서 예쁜이 수술이라도 해야겠다고. 애인 예쁜이 수술해주는 돈이 그렇게 아깝나?)
아무튼 뭐 그렇다. 내가 섹스에 대해 알면 뭐 얼마나 알겠느냐마는 일단 도덕적인 섹스는 이렇다.
그런데 사회에서의 섹스는 이것보다 좀더 꽉 죄는 느낌이 있다.
예를들면 아무리 쌍방이 합의했다더래도, 미성년자의 섹스는 사회적으로 용인할수가 없으며,(왜냐하면 미성년자의 사고판단은 믿을 수가 없는게 많기때문.)
근친간의 섹스도 용인할 수 없으며
어쨌건 자기자신이나 상대방이 원한다하더래도 자기자신에게나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다거나 불행해질수 있다거나 장기적으로 봤을때에 안좋을것같은 섹스는 원천 봉쇄하고자하는게...
아마 우리나라의 통념적인 성도덕이며, 이런 성도덕을 기반으로 성에 관한 법이 지정되어있는걸로 안다.
그리고 대부분의 섹스자유주의자들은 이런 성도덕에 반발하고 있다.(그런 그들 사이에서도 우리나라는 특히 반발하는 항목이 다르며 서로가 서로를 혐오하는 듯하다.)
내가 얘네들의 논리에 콧웃음을 치는게..
그냥 앞뒤가 안맞아보여서 그렇다.
그리고 자신의 자신감없는 논조를 영어단어를 쓰지 않으면 표현할수 없을것같이 이야기하는 애들이 무척 많다.
일단 논리의 껍데기가 가진 인상이 이런식이라서 논쟁이 결말이 나기도전에 나는 얘네들을 찌질이라고 정의해놓고 논쟁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은 얘네들을 상대하는건 시간낭비라고, 어차피 극소수론에 불과하기때문에 아무도 관심을 안갖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얘네들에게 왜 관심을 갖느냐며는 나와의 어떤 공통분모를 느꼈기때문이다.
얘네들과 반박하고 논쟁하다보면 내가 미처 못느낀 내 자신을 느낄 것이고 나는 좀더 나에게 솔직해질수 있을것 같았다.
그리고 어쩌면 얘네들이 내가 못들을 말을 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이야기를 한 애들은 한번도 보지 못했다. 나는 이게 참 아쉽다.
성도덕.
도덕은 어디까지 적용되어야하나.
남의 불행에 대해 간섭하는 것은 도덕인가 아닌가.
만약에 도덕이라면 우리는 어디까지 간섭해야하나.
(덧붙여 책임지지 않는 간섭은 비도덕적인데, 그러면 그 간섭에 대해 우리는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하느냐도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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